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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역사

많을 때는 6000명이 넘었다. 소록도의 복음화는 1935년 세 명의 한센인이 기도와 공소 예절을 하면서 시작됐다. 1938년 최초의 세례식이 거행됐고, 1943년 김필현 (광주대교구 나주본당 주임) 신부 주례로 첫 미사가 봉헌됐다. 1946년에는 공소가 설립됐고, 1958년에는 병원 직원들을 위한 별도의 공소가 설립됐다. 공소는 1960년 8월 소록도본당으로 승격했다. 직원들을 위한 1. 역사. 선사문화 그 밖의 시설로 1916년 나병원(癩病院)인 소록도자혜의원(慈惠醫院)이 처음 설립되었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다. 취락은 병사지대(病舍地帶)와 직원지대.

역사.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1910년 세운 시립나 요양원에서 시작됐다. 1916년에는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정식으로 개원했다 소록도의 소나무 길은 과거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를 구분하는 경계지역이었어요. 이 길에서 한달에 한번 면회를 허용하였는데 부모와 자녀가 도로 양옆으로 갈라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 했던 장소로 환자들은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어요. 국립소록도병원은 1916년 일본 총독부 영에 의해 개원하였어요.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우연의 일치인지 1916년 오늘이 일본총독부에서 소록도 자혜의원을 설립해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 이주한 날이네요. 다리를 건너 바로 주차장이 나오는데 여행을 온 일반인 분들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시고 해변가 옆으로 설치된 인도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진짜 소록도 여행이 시작됩니다 소록도는 전남 고흥반도의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가 채 안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고 불리운다. 이 섬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섬이지만, 현재는 700여명의 환자들이 애환을 딛고 사랑과 희망을 가꾸고 있습니다. 섬의. 1916년 일제는 신의 후손이 통치하는 나라에 한센병 환자 같은 사람이 존재하면 안 된다며 소록도에 소록도자혜의원을 개원합니다. 이곳은 한센병의 치료 목적보다는 한센병 환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 수용하기 위한 시설이었어요

[소록도] 소록도 역사와 현황 가톨릭평화신

소록도 역사 | 소록도 역사. 하얀마을 2006. 2. 11. 12:41. http://blog.daum.net/chskac/6907372. 호남의 최 남단인 소록도는 배타는 기분도 느낄새 없이 금방 건너갈수 있는 곳이기도 한 이 곳이 한센환자들의 애환이 담긴 반세기의 슬픈 역사를 안고 살아온 곳이다. 소록도 (小鹿島)란 작은사슴을 뜻하는데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섬의 모습이 아기사슴을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국립소록도병원의 역사는 1916년 일본 명치천황이 하사한 기금으로 설립된 소록도 자혜의원에서 시작되는데, 이 병원은 당시 조선 내의 유일한. 고흥, 소록도, 거금도의 선교 역사를 집필하면서 먼저 1차로 본 글을 발표하게 되었다(계속: 소록도교회 역사). 소재열 목사(한국교회사 Ph.D., 조선대 법학박사

소록도(小鹿島)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Ak

  1. 소록도 교회의 역사 .소록도 소계 역사적 배경 1882년 5월 22일 한미 조약이 체결되고 한국에도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되니 1884년 10월20일 에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알렌(Horace Newton Allen)의사 부부가 개신교 최초의 의료선교사로 들어와 왕실 병원 제중원(1886년)을 세우고 1885년 4월 5일 언더우드
  2. 이는 한센인 학살과 차별의 역사 중 가장 큰 아픔으로 기록되는 사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2002년 8월 22일 11시 30분, 사건 현장이었던 국립소록도병원 치료본관 앞에 이날을 기리기 위한 애한의 추모비가 건립되어 있다
  3.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속하는 섬으로 도양읍과는 600m 거리에 있습니다. 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섬이지만 현재는 700여명의 환자들이 애환을 딛고 사랑과 희망을 가꾸고 있습니다. 섬의 면적은 여의도의 1.5배인 15만평 정도에 불과하지만 깨끗한 자연환경과 해안절경, 역사적.
  4. 소록도는 하늘에서 보면 아기 사슴 밤비처럼 생겼다. 하늘을 날 방법이 없던 옛 사람들이 이 사실을 어찌 알았는지, 섬 이름이 '아기 사슴 섬' 소록도小鹿島다. 1917년 5월 17일 소록도 자혜의원이 문을 열면서 사람들 편히 살던 사슴 섬이 완전히 바뀌었다
  5. 여수환경운동연합 > 자료마당 > 미디어자료 > 고흥 소록도 역사기
  6. 명단공표. 건강보험 거짓청구 요양기관 명단공표; 직장어린이집 설치의무 미이행 및 조사불응 사업장 명단공
  7. 이 글에서는 1980년대를 전후한 시기부터 국내에서 발간된 소록도 관련 역사 기록과, 소록도에 거주한 한센인(나환자)과 의료 관계자의 증언 및 문학작품을 독해함으로써 사회적 타자로서의 한센인의 삶과 역사를 증언할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먼저 역사 기록과 구술 증언을 중심으로 해방 직후.

과거에는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나 현재는 다제요법 (MDT)을 통해 완치가 가능하며 감염의 우려도 사라졌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센병에 관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으며, 구한말 선교사들이 각지에 요양소를 세우고 1916년 소록도에 자혜의원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한센병 극복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한센병 치료제들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소록도사람들한테 감사하는 마음 크다 자치기구가 들어서 있는 빨간벽돌의 건물. 소록도는 한국근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이 보유중인 한센병 및 소록도 역사관련 박물관자 국립소록도병원(원장 박형철)은 국가기록원과 1일 오후 2시 국립소록도병원에서 소록도 한센 100년 역사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협약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국립소록도병원은 2016년 5월이면 100년을 맞이하게 된다. 긴 역사맘큼이나 소록도 관련 유물이나 사료 등을 정리·보관하는데 어려움이.

이건희 컬렉션 연합 특별전·아동학대 방지발로 뛴 '현장공감 예산' 안진영 기자 / 기사승인 : 2021-09-01 07:27:4 제목 없음 [2021년 9월 1일(수)] 오늘의 명언 건강하고 멋진 인생! 돈도 명예도 건강을 잃으면 소용없습니다. 하루 30분 이상 땀 흘리며 운동합시다. 내가 먼저 건강해야 사랑하는 가족을 지킵니다. - 건강지킴이.

소록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

소록도80년사를 참고하여초기 역사 일부를 간추렸습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검토하여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1276674301_소록도병원역사(참고자료).hw 본문바로가기. search. 검 소록도 병원 전용도선, 일반용 도선도 매일 수시로 운항되고 한센인의 슬픈 역사 '중앙공원' 병원 본관 앞에 세워진 '애한의 추모 비'가 눈길을. 소록도 1917~2016 소록도는 하늘에서 보면 아기 사슴 밤비처럼 생겼다. 하늘 날 방법이 없던 옛사람들이 이 사실을 어찌 알았는지, 섬 이름이 '아기 사슴 섬' 소록도(小鹿島)다. 1917년 5월 17일 소록도자혜의원이 문을 열면서 사람들 편히 살던 사슴 섬이 완전히 바뀌었다

다음 편 [역사 속 의료 이야기]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파리 사냥' 2,324 읽음 시리즈 번호 2. 현재 편 [역사 속 의료 이야기] 일제강점기의 나병과 소록도. 5,488 읽음 시리즈 번호 1. 이전 편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는 누구일까요 <소록도 100년의 이야기> 100여 년 넘는 역사적 고난을 묵묵히 감당해 온 소록도 주민과 성도들은 아직도 내면에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외부인에게 쉽사리 열어젖힐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를 여전히 가슴에 담은 채 살아간다. 소록도와 소록도 교회는 한국사회와 교회의 자산이며, 유산 그 슬픈 역사 되풀이 되지 않기를 소록도 한센인들은 오마도 간척지 강제 탈취가 집권당 지역구 국회의원 신 와 군사정권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세월 정치적 이유로 그 사실을 발설할 희망의 섬 소록도. | 나름 모태신앙이다. 태생이 기독교지만 소위 '개독교'라고 불리는 나사 빠진 기독교도인들의 모습들을 뉴스에서 마주할 때면 나도 참 한심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이 컸으므로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를 나갔을 거다(이게 바로 모태신앙의.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역사문화전공 교.. 자본은 세월이 담긴 공간을 팔기 위해 건축물을 화장하고 포장하고 수술할 준비를 끝냈습니다. 잊혀서는 안될 역사를 품은 공간, 소록도

소록도, 한센인 아픈 흔적에서 근대 역사문화유적지로 탈바꿈 한국일보 | 하태민 | 입력 2016.05.08 20:06 | 수정 2016.05.09 10:03 폰트변경하 노고단 성삼재에서 노고단 오체투지 행사날 소록도의 바닷가 김천역(김천교도소방문하고 밤차를 기다리는 김천역사) sg하얀집 :: 노고단 소록도 김천역

전남 고흥 국립소록도병원의 역사를 기록한 구술사료집(사진)이 발간됐다. 국립소록도병원은 2016년 역사적인 개원 100년을 앞두고 소록도의 지난 아픈 역사와 함께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담은 '또 하나의 고향 우리들의 풍경' 1집을 발간했다고 1일 밝혔다 잊혀서는 안될 역사를 품은 공간, 소록도 역사를 품은 건축물의 보존과 복원, 재생에 관한 고민 등록 : 2017.11.22 12:1 소록도 입구의 이 길은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는데, 소록도와 한센병의 역사 및 관련 자료를 잘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 동안 단편적으로만 알았던 소록도와 한센병에 대해 좀 더 깊게 알 수 있었습니다 2005년 10월 9일 완도군 충도 태양광 발전 선진사례 견학을 다녀왔습니다. 회원 40여명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완도군이기는 하지만 고흥 녹동항에서 배를타고 들어가는 것이 가까워서 오는 길에 소록도 역사기행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함께해 주신 회원님들

Video: 백년의 아픈 역사를 지닌 소록도 : 네이버 블로

한센병(나병) 환자들을 격리, 치료하기 위한 소록도 자혜병원이 1916년 5월 17일 문을 열었다. 이전에도 부산과 대구, 광주 등에 한센병 요양원이 15, 소록도 반세기 / 심전황 역사 / 전남일보 출판국 1979 1 01. 16, 아으 70년, 찬란한 슬픔에 소록도/ 심전황 역사 / 도서출판 동방 1993 7 20. 17, 사슴나라 사람들 / 박용규 수기모음 / 혜성문화사 1973 1 25. 18, 당신들의 천국 / 이청준 장편소설 / 문학과 지성사 1976 5 20

전남 고흥 소록도 여행│ 아픈 역사의 실타래 : 네이버 블로

  1. 소록도 '벽안의 천사'노벨평화상 추진. 오스트리아 간호사들이 있습니다. 평생 사랑을 몸소 실천한 이들 '벽안의 천사' 2명을 정부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로 했습니다. 모은희 기자입니다. 한센병에 걸리면 가족과 생이별해야 했던 아픈 역사를.
  2. 소록도 한센인들의 피어린 역사를 글 몇 줄로 압축하기란 쉽지 않구나. 단적인 예로 단종수술의 비극을 얘기해줄게. 한센병은 유전병이 아니야.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할 수 있다는 그릇된 신념에 물든 우생학이 풍미하던 시절,.
  3. 이번 현장취재는 국립소록도병원 설립과 소록도 한센인 정착 100 년을 앞두고, 소록도가 고통과 아픔의 땅에서 치유의 섬으로 탈바꿈하는 데에 이바지한 천주교의 역사와 현황을 언론매체에 소개할 목적으로 이뤄졌다
  4. 소록도 · 관광지: 소록도 또한 소록도병원의 역사와 환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갖가지 자료가 전시된 생활자료관에서는 한센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생각게 한다. 이밖에도 공원내에는 나환자 시인 한하운의 보리.

전남 소록도 에 대하여

한센병은 낫는다, 슬프고 아름다운 섬 소록

소록도 한센인의 아픈 역사 현장에 미술관 들어선다. cbs노컷뉴스 임기상 선임기자 메일보내기; 2015-10-19 10:5 수십년간 방치됐던 전남 흥군 소록도 서생리 마을 옛터가 정비 등 보수사업을 거처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25일 국립소록도병원에 따르면 병원관계자를 비롯한 한센인, 사업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소록도 서생리 마을 옛터 보존사업'준공식을 최근 가졌다.소록도 서..

한센정보 > 한센병 > 역사 > 최초의 기록 국립소록도병

  1. 한센인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 전남 고흥군 소록도의 국립소록도병원이 15일 개원 90돌을 맞았다. 1916년 5월 일제가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 수용하기 위해 '자혜의원'의 이름으로 문을 연지 한세기가 가까운 세월이 흘러 졸수(卒壽)가 된 것이다
  2. 한센병(나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 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고흥반도의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가 채 안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고 불리운다. 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섬이지만 현재는 700여명의 환자들이.
  3. 소록도 자혜병원 설립 매일신문 배포 2007-02-24 09:17:36 | 수정 2007-02-24 09:17:36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닐니리 한센병 시인 한하운은 자신의 시 보리피리에서 철저한 고독과 소외의식을 읊조린다
  4. 고흥군 관광 홈페이지 소록도 . LG 라모스, 한 달 만에 10홈런 폭발구단 역사 최초 ; Change the target language to find translations. Tips: browse the semantic fields (see From ideas to words) in two languages to learn more
  5. 한국교회 소록도 선교는 한센 환우들의 소록도 집단 수용과 그 역사를 같이 한다. 1935년 한센병을 앓던 장순업씨 등 3명의 천주교 신자가 소록도에 들어오면서 공소예절이 시작됐으며, 1943년 환우들을 위한 병원지대에 병사공소가 설립, 김필현 당시 나주본당 주임 신부 집전으로 첫 미사가 봉헌됐다
  6. 「고흥 소록도 4·6 사건 진정서 및 성명서」, 「고흥 소록도 녹산의학강습소 유물」, 「서울 진관사 소장 괘불도 및 괘불함」등 3건을 문화재로 등록한다. 또한, 「서윤복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메달」, 「공군사관학교 제1기 졸업생 첫 출격 서명문 태극기」등 2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
[취재파일] 당신이 &#39;소록도&#39;에 꼭 한번 가봐야 하는 이유

마리안느 마가렛 노벨평화상 100만 서명 ' 소록도 서 40년 한센인 간호' 2019-06-19 17:17:36. 1962년, 1966년 한국 땅을 밟아 소록도 에서 40여년을 한결같이. 아울러, 한센병 환우들의 고통과 애환의 97년 역사를 지닌 소록도 중앙교회를 비롯한 신성, 동성, 남성, 북성교회는 '한국기독교 역사사적지 12호. 소록도 주민이자 한센인인 강선봉의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1946년 한센인 어머니를 따라 소록도에 들어간 후 1962년 오마도간척사업이 시작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던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작은 사슴 섬'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반도 녹동 항구 맞은편에 위치한. '고흥 소록도 4·6 사건 진정서 및 성명서'는 1950년대 초 환자들의 증가와 전쟁으로 인한 구호물자가 줄어든 상황에서, 당시 소록도 갱생원장의.

소록도 손양원목사님에 대하여[역사인물

오스트리아 역사; 또 친전을 통해 지난 2016년 국립소록도병원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만나 식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헌신으로 보여주신 사랑은 '행함과 진실함'이었고, 지금도 많은 한국 국민이 간호사님을 그리워한다 '고흥 소록도 녹산의학강습소 유물'은 제1기생에게 수료 기념으로 지급된 청진기, 해부학책과 수료증 등 녹산의학강습소의 운영 기록을 보여준다. 이 유물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소록도만의 의학교육제도와 자활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의료사적 가치가 있다 김귀분은 패전 후 일본에서, 재일동포 한센인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다뤘다 순천교도소 소록도지소에는 '일제의 인권유린 현장'이라는 안내문. 이 책은 패전 후 일본에서 오랫동안 차별받아온 재일교포, 그중에서도 사회 일반에서 차별받는 존재인 한센인이라는 더욱 예민한 존재를 다루고 있다

[고흥 여행]슬픈 역사 소록도 그리고 거금도생태숲 : 네이버 블로

  1. 소록도 작가들, 작품으로 희망의 메세지. 고흥군 분청문화박물관은 지난달 30일부터 박물관 2층 로비에 소록도 해록예술회 작품전 '희망의 속삭임'을 개최해 병마와 편견과 싸우고 있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고흥군 제공. 병마 그리고 세상의 편견과 싸웠던.
  2. 국립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소록도에 얽힌 회한의 역사를 돌아보았다. 4월 21일 아침,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 소록대교의 한쪽 끝에 위치한 섬 주차장에 도착한 관광버스에서 30여 명의 중년 여성이 줄지어 내렸다
  3. 국립소록도 병원이 소록도 100년의 역사를 담은 '소록도 100년, 한센병 그리고 사람, 백년의 성찰'을 발간했습니다. 병원은 역사 편과 의료 편 2권으로 구성된 책에 한센인의 시각에서 재조명한 소록도의 역사와 한센병 치료를 위해 헌신한 한센인들의 역할 등이 기술됐다고 설명했습니다
  4. 문학은 인터파크 도서! 인터파크 롯데카드: 5% (5,130원) (최대할인 10만원 / 전월실적 40만원) 북피니언 롯데카드: 30% (3,780원
서울 아이들과 가볼만한곳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소록도, 그 아픈 역사 속으로

대학청년회, 소록도 방문 매년 한두 차례씩 벌써 6회째 한센병 환우들 마음 다해 섬기고 예수도 전해 신앙 핍박에도 믿음 지킨 어르신들에게 도전받기도 사진설명> 대학청년회 소록도 팀원 46명이 신성교회 앞에서 기념 촬영을 진행했다. 3박 4일 동안 환우들 가정을 심방해 전도하고 할아버지.  소록도... 작은(어린) 사슴을 닮은 작은 섬.... 한센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90여년의 한과 고통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바로 그 섬 소록도를 지난 일요일 광주푸른청년회 기행모임 '길동무'.

그것이 알고싶다 소록도 뼈아픈 역사 : 네이버 블로

  1.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소록도 100년의 역사. 일본은 과거의 한센병 대책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자국민 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대만 등 다른 나라의 피해자에게도 1인당 1억 원 수준의 배상금을 지급했습니다
  2. 그 고난의 역사 가운데 소록도 사람들은 기도했어요.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의 가족이 된 소록도교회는 주민들 대부분이 출석해 일제시대 당시 6,300여명까지 모이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교회였습니다. [인터뷰] 김선호 목사 / 소록도교
  3. 역사 문화산책 소록도 갱생원은 1930년대 말에 이르면 세계 제2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대규모 수용시설이 되었지만, 동시에 환자들의 강제노동, 감금, 생체실험, 단종 등이 마구 이루어져 마치 종신감옥처럼 되어버렸습니다
  4. 소록도. 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속하는 섬이 다. 섬의 이름은 그 형상이 작은 사슴과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고흥 반도 끝의 녹동항에서 배로 불과 5분 거리에 있다. 2009년 3월 3일 에는 소록대교가 개통하여 육로로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5. 최근 소록도 역사 자료집> 정리 작업을 마무리한 서울대 사회학과 정근식(58) 교수는 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00여 년 소록도의 역사와 뿌리를 추적한 기록이라며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갖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6.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슬픔. 안녕하세요, 배준영 기자입니다. 6월 5일, 가족들이랑 같이 소록도에 갔습니다. 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있는 섬인데요, 아기 사슴 모양이라 소록도로 불리게 된 겁니다. 소록도는 원래 한센병 사람들이 살던.

소록도 역사 - 하얀마을

부끄러운 고백을 먼저 하겠습니다. 2016년 새해를 이틀 앞두고, 취재를 위해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으로 향하면서 '환자들과 손을 잡아도. 소록도 자체로도 매우 아름다운 섬입니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국립소록도 병원내에서는 이 병원의 역사가 깃든 일제 시대의 건물, 여행과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세계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그 내용과 느낌을 나누고자 함 아울러, 한센병 환우들의 고통과 애환의 97년 역사를 지닌 소록도 중앙교회를 비롯한 신성, 동성, 남성, 북성교회는 '한국기독교 역사사적지 12호' 지정 외에, 순교자(김정복목사) 사적지 지정교회로도 선정되어 그 의미를 더했다 [상처와 치유의 역사 간직한 소록도 가보니]한센인 탈출 막던 도로, 이젠 '치유의 길'로.. 서울경제 | 박성규 기자 | 입력 2016.04.26 18:59 | 수정 2016.04.26 18:5

소록도에서 '슬픈 역사'를 만나다 - 오마이뉴

소록도 영동 노근리 평화공원 역사를 바로 보자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 뜨고 있다. 말 그대로 단순히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비극의 현장을 돌아보며 자기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목차 . 서론 눈물과 기도의 이야기 보리피리 윤일심의 소록도 통신 소록도 교회의 역사 에필로그 소록도 방송일지 참고문 역사 사적지 12호로 선정된 소록도 중앙교회 등 5개 교회는 97년간 한센병 환우들의 고통과 애환을 함께 해왔다. 송귀근 고흥군수는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으며, 기록은 찬란한 문명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역사의 타임머신이라며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억하고 영구히 보존해 후세에게 고흥의. 오스트리아 국빈방문때 선물 전달우리 마음은 소록도에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소록도의 천사'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간호사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글로 쓴 친필 답신을 보냈다고 청와대가 3일 전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오스트리아 국빈방문 때 신재현 주오스트리아 대사를. 살아가는 이야기 | 요즘은 소록도와 관련된 책을 읽는 빈도수가 높아지고 있다. 문호준 작가의 '군도의 아침'이나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그리고 소록도 역사와 관련된 자료들이 그것이다. 소록도와 연관된 책을 자주 읽는 것은 내가 현재 소록도에 근무하고 있는 관계로 한센인에 대한 몰이해를.

1981 소록도 천주교회

고흥, 소록도, 거금도(금산) '교회역사 탐방':리폼드뉴

수십년간 방치됐던 전남 흥군 소록도 서생리 마을 옛터가 정비 등 보수사업을 거처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25일 국립소록도병원에 따르면 병원관계자를 비롯한 한센인, 사업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소록도 서생리 마을 옛터 보존사업'준공식을 최근 가졌다 이돈삼의 마을이야기>한센인이 그로톡 갖고 싶었고 恨 서린 오마도. 고흥 오마마을. 5·16 직후 오마도 간척 시작. 첫 삽 26년만인 1988년 완공. '소록도 멋어난다' 말 믿고. 한센인들 죽도록 일했건만. 인근 주민들 반대로 쫓겨나. 아픈 역사 담은 '추모 공원'. By 편집.

기독교 영성 아카데미 소록도 교회의 역사

한센병 박물관에는 소록도 병원의 역사와 환자들의 삶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린 그림, 서예 등 여러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센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소록도 중앙공원은 자연과. '소록도 천사 수녀님 고맙습니다' 감사 손편지 387통 이번 기회를 통해 아픈 역사와 기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아무런 편견 없이 43년간 봉사하신 두 분 수녀님이 존경스러웠다고 말했다

치욕의 역사, 명예의 역사 | 이 땅의 역사는 '소인배와 그들 사이사이에 숨은 대인들의 역사'이다!우리 땅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역사의 명(明)과 암(暗), 역사 속 소인배와 대인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담고 있는 역사 인문 기행서. 이 책은 위대하고 찬란한 역사만을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역사의. 작은 사슴을 닮은 섬 소록도! 일제강점기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섬이라는데 소록도 자혜의원에서 자행된 한센병 환자들의 강제노역 등 해록예술회 회원들의... Jump to. Sections of this page. Accessibility Help. Press alt + / to open this menu 올해 3월 말에 고금도의 적목봉 산행을 하고나서 소록도를 방문하였지만 그때는 시간 제한으로 소록도 국립.. 흔히 '세마비'로 불리운다. 이에 국립 소록도 병원은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고통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하여 2016년 개원 100주년을 맞아 한센병 박물관을 소록도내에 개관하였다. 지상 2층 연면적 2006㎡ 규모로 지어진 박물관은 1층에는. 소록도박물관 중장기발전계획 전략체계도 비전 행복을 위한 동행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 소록도의 역사적 가치 보존 - 전략 목표 치료와 역사 주제맞춤형 특화박물관 삶과 인권 미래지향적 인권박물관 문화와 소통 지역문화 기반(플랫폼)박물관 추진 전 마리안느와 마가렛. 20대 청춘에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43년(1962-2005년)을 소록도에서 살다 떠난 두 사람은 소록도 100년 역사에 가장 깊이 기억될 인물이다